국립공원/설악산

한계령에 얽힌 이야기...(펀글)

산바람과함께 2008. 5. 23. 19:47

한계령 노래에 얽인 이야기...

 

 

등산을 하다 정상에 서면 간혹 '한계령'이란 노래가 생각난다.

난 이곡을 한국 대중가요중 최고의 노래라 생각한다.

깊이가 있기 때문이다.

 

생각이 있었던 젊은 시절을 보낸 하덕규는 이상과 현실사이의 괴리감에 많은 절망과 방황의 날들을 보내게 되고, 내적 번민이 극에 달해 죽음의 유혹을 느끼던 시절에 그가 안고 있던 괴로움의 끝을 떨어버리려 결심한 후 다시 돌아오지 않겠다며 떠난 여행에서 설악산 한계령에 올라 만들어진 작품이 '한계령'이다. 죽음의 강을 건너지 않고 인간의 세계로 다시 돌아오며 마치 모세가 십계명을 들고 돌아오듯 하덕규는 '한계령'이란 노래를 들고 내려오게 된다.

 

그후 몇 해 뒤 하덕규는 '가시나무'를 발표하게 된다. 자아의 찾아 헤매이던 고통의 결과였다. 당시 하덕규는 종교생활에 발을 디디며 '자아'와 '신' 사이의 갈등을 고백한 '신앙고백'적인 노래이다.

 

노래 속에 등장하는 ‘가시나무’는 무엇보다도 성서 속에 나오는 가시나무와 연관된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숨질 때 로마병정이 씌웠던 가시면류관이 가시나무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래서 ‘가시나무’는 인간 마음 속에 온갖 갈등과 번뇌를 초래하는 이기심, 시기심, 허영심, 자만심 등을 폭넓게 함축한다. 이런 면에서 종교적 차원의 내적 성찰을 내용으로 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어, 한국 대중가요의 가사가 흔히 드러내는 깊이 없는 감상주의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

노래의 첫 소절에서 하덕규는 나 속에 있는 ‘나’의 과잉을 지적한다. 자기중심적인 생각으로 가득 찬 자신 때문에 타인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헛된 바람’ 즉 허영심, 자만심, 이기심으로 가득 찬 마음 속에 타인에 대한 배려는 찾기 어렵다. 결국 그것은 스스로를 외롭게 만들고, 상처받게 만드는 계기가 되고 말았던 것에 대한 되새김질의 독백이다.

 

그러나 2000년대 어느 젊은 한 기획사의 가수는 이 노래를 '사랑타령'으로 격하시켜 버리고 만다. 그는 이 노래로 '돈'을 벌었을지는 몰라도 '노래'를 망쳐 버렸다.

 

 

다시 한계령으로 돌아오자.

1984년을 전후하여 하덕규는 심한 슬럼프에 빠졌다. 그는 마음을 달래기 위해 많은 여행을 했다. 그리고 그 여행지는 늘 설악산이었다. 어느 날 또 설악산을 찾아갔는데, 그때 산 속에서 며칠지내는 동안 설악산이 하덕규에게 이런 얘길 들려주었다. "이젠 돌아가라, 더 이상 산에 오지 말아라. 어서 돌아가서 치열한 삶을 살아라." 그 순간 하덕규는 또 하나의 깨달음을 얻었다.

 

자신이 고향을 찾고, 그리고 노래하면서 위안을 받기도 했지만, 그것이 근본적인 해결 방법은 못되고, 결과적으로는 현실도피가 되고 말았구나 하는 깨달음이었다. 그래서 다시 삶의 현장으로 돌아가 이제는 정면으로 이 새대와 만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따질 건 따지고 품을 건 품겠다는 노래의 식을 새롭게 갖게 된 것이다.그리고 그 설악산의 얘기는 <한계령>이란 노래로 만들어져 양희은을 통해 불려졌다.

 

저 산은 내게

우지마라 우지마라 하고...


발 아래 젖은 계곡 첩첩산중

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내 가슴을 쓸어 내리네

아... 그러나 한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네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